About

  • 나순단Na Soondan

  • 소개글

    남자와 여자 밤과 낮 하늘과 땅 선과 악 네가 있어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비로소 존재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만 으로 서로에게 지금 이 순간 천국이 된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텅빈 마음
    세상에 내맡길 수 있는 평온한 자유
    긍정적인 마음과 언어 높은 주파수는 평온을 준다.

    마음에 온 세상이 있고 우주가 있으니 마음이 우주보다 넓다.
    모든것은 마음 안에서 스스로 창조해 가니
    순간순간 사랑의 빛으로 빛나는 천국이 된다.

  • 미술평론가 최광진 평론
  •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는 오랫동안 외부 세계를 눈에 보이는 대로 포착하려는 재현을 미술이 행해야 할 사명처럼 여겨 왔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세계의 포획자로서 이성적 주체의 능력을 과시하는 인간 중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해 온 동양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분화되기 이전의 ‘무위자연’의 상태를 동 경해 왔다. 이러한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을 포획하려는 분석적인 눈의 논리가 아니라 자연과 동등한 조건에 서 교류하려는 감각적인 ‘몸’의 논리이다. 대뇌의 이분법적 사고작용이 없는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나순단의 회화는 그러한 동양적 세계관을 따라 몸이 외부 세계와 교류하고 몸이 기억한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 은 자신이 언젠가 외계와 만나 찌릿하게 공명하며 한순간의 불같은 사랑을 나눈 흔적이다. 그의 작업은 의식을 몸과 마음에 집중하여 이러한 과거의 강렬한 기억을 소환하고, 그때의 감정과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감정이 먼저인지 이미지가 먼저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몸에 각인된 무의식적인 이미지들을 생성해 낸다. 어떤 경우는 최면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발견한 내적 불안의 요인이 되는 무의식적 이미지들을 소환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작품은 결과 적으로 현실에 있음 직한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공 간이나 서사가 선형적이지 않고 꿈속의 이미지처럼 비현 실적이고 모호하다. 그러나 그것이 살바도르 달리나 막스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 회화에서처럼 전적으로 무의식 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미지들은 자신이 과거 현 실에서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한 리얼리티에 근거한 것 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몸과 세계가 상호 침투하 며 정보를 교환하는 역동적인 ‘연기(緣起)’ 작용을 포착 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정적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주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몸은 유동 적이고 다층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메를로 퐁 티는 몸에는 “물리적 질서와 생명적 질서, 그리고 인간적 질서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형성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질서를 지닌 몸이 세계 속에서 핵심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동시에 독립된 개체로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중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몸의 질서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분법적인 대뇌의 지적인 분별 작용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또한 표현주의 예술에서처럼 주체의 주관적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주객이 미분화된 몸의 생명 작용을 응시하 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로 흩어진 산만한 정신을 거둬들여 오직 몸에 의식을 집중하여 현존해야 한다. 그래서 몸이 이완되고 뇌파가 세타파(4~8Hz)로 고요해지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 몸과 우주의 경계가 사라지고 어떤 몽환적인 이미지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의 회화는 뜬구름같이 모호한 이러한 이미지에 질서를 부여하며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몸의 이미지를 소환해 내는 작업은 깊은 몰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명상 수행과 다르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자신이 오랫동안 실천해 온 명상과 요가 수행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안한 감정을 정화하는 치유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 작업은 화려하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강아지풀과 교감하며 문인화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음이 끌린 하나의 외부 대상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작들은 그림의 대상을 외부 대상에서 자신의 몸으로 치환함으로써 몸의 기억이 생성해 내는 다층적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그럼으로써 명상적 태 도를 견지하면서 타성에 젖은 종래의 양식에 파격적 변화를 불러왔다. 이러한 과감한 변화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화두가 된 몸의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종래의 단조로운 표현에서 벗어나 자기 몸의 현존이 생성해 내는 풍요로운 시적 이미지 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변신이라고 생각된다.

  • 최광진(미술평론가)
  • 미학박사 이미애 평론
  • 나순단의 ‘운필(運筆)과 선(線)’
    동양회화에서 붓끝을 움직이는 운필법(運筆法)이나 획을 긋는 ‘선(線)’의 효과는 작가정신을 표출하는 상징으로 매우 중요시 되고 있다. 동양회화를 “선의 예술이자 상징의 예술”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다. 때문에 선을 중요시 하는 동양회화는 반드시 선의 기본개념에서 화면을 전개해 나가기 마련이다.

    중국 육조시대 남제(南齊)의 화성(畵聖) 사혁(謝赫)이 저술한 <古畵品錄(고화품록)> 화론(畵論)에 따르면 머리글(序)에 그림의 여섯 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화육법(畵六法)이다. 이는 동양회화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 다음으로 ‘골법용필(骨法用筆)’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사혁은 원래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사생도 필요 없이 대상(對象)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얼굴과 골격까지 전체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골법용필’이다. 골법에 따라 표현된 존재의 형(形)은 ‘최소’이고 의미의 형(形)은 ‘최대’인 형체(形體)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신비로운 동양회화의 선은 단순한 상(象)의 윤곽을 떠내는 경계선이 아니라 대상이 품고 있는 내면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운(氣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여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풍부한 감성이 배어나는 선이며 그림에서 향기, 즉 묵향(墨香)이 넘쳐나야 비로소 기운을 얘기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화면에 향기가 없는 선은 생명이 없는 선이라고 한다.

    선은 그 자체가 감성을 품고 있기에 작가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천착해야만 선을 통해 작가 자신의 정신을 표현하고 조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현현(顯現)이라고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화가 나순단은 운필(運筆)의 생명을 토대로 자연의 생명체 중 미물에 불과한 ‘강아지풀’을 유달리 수묵으로 구사하는 작가다. 그가 이번에 개인전으로 여는 <강아지풀展>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자유분방한 획으로 보다 성숙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선은 그에게 한마디로 감성의 표출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번 전시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보도블록이 깔린 도심지 인도를 무심히 거닐다가 뜻밖에도 블록 틈새를 비집고 피어나는 ‘강아지풀’을 발견했다. 야생에서만 자라는 ‘강아지풀’이 씨앗을 흩날려 살벌한 도심에서 생명력을 과시하다니, 새삼 풀 한 포기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발견하고 최첨단 문명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는 인간의 삶과 비교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강아지풀’은 한마디로 잡초가 아닌가. 흔히 눈에 띄는 들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이 잡초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바닥에 짓밟히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명력이 강한 풀이기 때문이다. 하여 삶의 밑바닥에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는 사람들을 보고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비하하고 민초(民草)라는 말로 자조한다.

    하지만 작가 나순단은 미물에 불과한 이 ‘강아지풀’을 보고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강아지풀’을 작업의 테마로 추구하기 시작한 연유다. 엄동설한에도 강인하게 버티며 봄을 기다리는 ‘강아지풀’의 생동감에서 그는 새삼 신(神)이 내린 기운을 느끼게 되었고 그 감동을 필획으로 화폭에 담았다.

    그래선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강아지풀’은 어쩌면 자연에 순응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이미 초록빛을 상실해버린 삶의 궤적을 기운차게 되살려 보려는 소망으로 남달리 들풀에 애착을 느끼며 “수묵담채의 추상성을 통해 아름다운 ‘강아지풀’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다”고 했다.

    흔히들 동양에서는 시(詩)·서(書)·화(畵)를 하나로 간주하고 이 모두가 내면의 감성에서 우러나는 정신을 목표로 표출해 왔다. 때문에 동양회화는 대상물의 외부 묘사보다 대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신적 감동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선의 존재가 바로 작품을 완성하는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나순단은 오랫동안 동양회화와 함께 해온 서체서형(書體書形)을 통해 선의 유동성을 감성 표출의 화법으로 사용한다.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무의식적 드로잉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동양회화의 모필(毛筆)에서 그려지는 선묘(線描)는 딱딱한 연필이나 펜에 의한 그림보다 더욱 생명감과 직결되는 역동성이 강하다. 즉. 모필에 의한 선묘는 동세(動勢)가 풍부해 작품 그 자체에 많은 조형 요소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묘의 조형미는 선이 갖는 정신성과 생명감을 부여하고 여백과 더불어 공존하게 된다. 여백의 묘미 또한 막연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선묘와 조형의 한 부분으로 한결 여유로운 짜임새를 보여준다. 작가 나순단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흉중작화(胸中作畵), 즉 가슴 속의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형이상학적 조형의지를 추구하는 ‘정신미(精神美)’를 뜻한다. 하여 그는 이번 <강아지풀展>에서 하찮은 잡초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하고 “인생은 아름다우며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된다.”는 순수한 ‘인간성’ 회복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 이미애 (미술학박사·미술평론가)

History

개인전, 초대전, 부스전, 아트페어 그룹전 다수

신라미술대전특선 서울오스카갤러리우수작가상

봉산문화회관 개인전1회 2017

대한민국 현대한국회화전

계명한국회화전

갤러리단 개인전 2회 2018

아트페스티발 3회 부스개인전 대구 문화예술회관

봉산문화회관 4회개인전

갤러리 쉬갈다방 공주 5회 초대개인전2020

오월전 대구 아양아트센트

glass harmonica 이공갤러리 대전

아름다운 동행전 대구 문화예술회관

서울 SCAF Art Fair 6회초대개인전 롯데호텔

2020 청춘미술관 7회 초대개인전 상주

2020 히즈아트페어 인사아트프라자

대한민국남부국제현대미술제 갤러리조이 부산

갤러리 문 작은그림전 대구김광석거리

한국미술관 초대전 서울인사동

수성아트피아 수성미술가협회단체전

SCAF Aar Fair 부스개인전 서울엑스코

국제아트베스티발 포항

광주아트21 김대중컨벤션센터

부산벡스코 아트페어

갤러리위 초대전 평택2021

갤러리미쉘 8회 초대개인전 서울2021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블루아트페어

2022 대구아트페스티발 2인부스전(정태경ㆍ나순단)

대구엑스코 아트페어대구

2022 왜관다부동구하기 오모크갤러리남부미술가협회그룹전

경인미술관 계명한국화회 그룹전

서울리베라갤러리 9회부스개인전

2022.8 대구엑스코 블루아트페어

일본 오스카갤러리 그룹전

제4회 에코락갤러리 아트페스티발

경주아트페어

포항영일대라한호텔아트페어

일본오스카갤러리 부스전


대구미술대전 입선, 정수미술대전 입선, 경남환경미술대전 평론가상,
대구서예대전 입선, 한글미술대전 입선, 대한민국 안전문화 공모전 특선,
신라미술대전특선, 서울오스카갤러리우수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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